기용 님: 여기에 와서 뭘 느꼈어요?
나: 확실히 젊은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보다 훨씬 젊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한국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계속 걱정되는 게 한국이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나와서 사업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사업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해외에서 사는게 저에게 더 유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자유로운 느낌...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고 저랑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한국에서 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한기용 님과 10월 2일 San Jose에 있는 Barnes & Noble에서 나눈 대화 중에서 생각나는 질문과 내 답변
지난 9월말, 신혼여행 겸 미서부 로드트립으로 미국에 다녀왔다. 한 2주 정도 미국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일주일 좀 안되게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있었는데 다녀와서 “미국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걸 느꼈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자유로움과 다양성
실리콘밸리에 대한 미디어에서, 드라마에서, 다양한 매체에서 쉴 새 없이 봤던 미국. 30대에 처음으로 직접 밟게 된 거다. 처음 도착한 미국은 한국보다 사람들이 젊고, 아이들이 많았다. 입국하고 LA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자마자 마주친 사람들을 보고 “자유”라는 단어가 계속 생각났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누가 어떤 걸 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여행 내내 자유로움을 느꼈다. 다양성이 높은 문화와 삶의 양식이 곳곳에 녹아져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살면서 “다른 사람이랑 비슷하게 적당히 하면 되는데 왜 나는 이렇게까지 할까?” 생각했던 적이 아주 많았다. 퇴사를 하면서 세상 유난하게 퇴사 파티 열기, 청첩장 파티, 브라이덜 샤워로는 풋살 모임, 웨딩 드레스 대신 네이비 수트. 내가 그동안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선택한 것들이다. 다들 내가 주최한 모임에 와서 재밌었다고 해주었지만 스스로는 이걸 선택하면서도 고민하고, 눈치를 봤던 거 같다.
이번 여행에서 나랑 비슷한 사람을 여럿 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듣기도 했다. 레이크 타호에서는 네 명의 친구가 하이킹을 하며 브라이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자이언 국립 공원에서는 여러 커플이 와서 한 커플의 결혼식 피로연을 하고 있었다. 샌프란에 오래 살고 있는 친구도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겪은 재밌는 일화들을 얘기해줬는데, 우리 결혼식과 비슷해보여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게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게 되는 느낌이 아주 편안하게 느껴졌다.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사람, 아주 바쁜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도 자기 일에 자부심이 있어보이는 게 보였다. 여기서는 어떤 선택이든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궤적은 정말로,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
다양성과 자유로움을 기반으로 제약 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미국 회사, 그 중에서도 꼭 음악 산업과 관련된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
한국에서 회사를 오래 다니다가 미국에서 일하게 된 사람.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한국이 궁금해 방문해서 있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 사람.
중국사람이지만 일본에서 자랐고, 군대에서 일하다가 일본 사업부를 도와주기 위해 미국에서 일하는 사람.
나같이 한국에서 쭉 살다가 창업한 다음 미국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사람 등등…
다양한 삶의 궤적이 있다는 것도 이야기를 들으며, 거기 사는 삶을 보며 생생하게 느끼게 됐다.
더 넓어진 선택지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나에게 의미가 있는 건 내게도 선택지가 생긴 게 체감이 되었다는 것. 다음 커리어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느낌이었다.
한국에서의 패스가 한 장의 카드라면,
미국 혹은 다른 나라까지도 내가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주 많아지겠다고 느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진 않았었나보다. 실제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며 진짜로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민자가 많은 도시
또, 베이 지역에서 느낀 건 이민자가 많다는 거다. 미국 전체를 놓고 보다라도 캘리포니아 주는 항상 이민자 비율이 높다고 한다.
역사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The Mission, The Castro, The Haight 같은 샌프란시스코의 심장부에 역사적인 지역이 있다. 멕시칸 커뮤니티가 자리를 잡았던 곳, 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 미국 내 첫 성소수자 거리로 나왔던 사람들. The Haight에서 자랐던 히피 운동. 지리적으로 샌프란의 중심부에 위치하는 이 곳은 몇 십년 전 캘리포니아에 부푼 꿈을 가지고 온 이민자, 소수자들의 옛 둥지다. 그 역사 자체가 이 도시의 상징 같기도 하다.
LA에서 시작해 세 개 주를 거친 긴 로드트립을 마치고 Palo Alto의 EO 하우스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났을 때 안도감이 기억난다. EO 하우스에서 만난 수영 님이 본인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 얘기를 했을 때 모두 다 도와주려고 했던 그 에너지도 기억난다. 이건 아주 작은 사례일 것이다. 여기서는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한국 사람들, 일본 사람들,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간의 연결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꿈
꿈을 가지고 삶의 터전까지 바꿔가며 도전하는 사람들간의 연결감 일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도전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누구든 어떤 도전이든 해도 된다. 그리고 그 도전을 진짜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되고 싶다.
그래서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맹랑한 꿈을 꿔보게 되었다. 적어도 베이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이상하긴 하다. 이 도시에 일주일도 안 있었는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남편은 내가 커리어 내내 평생 꿈꾸던 도시라서 그런 걸거라고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네이티브에 비해 언어 능력도 부족하고, 비자도 없고,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막막함도 상상된다. 그래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팀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가진 제품에 대한 감각과 경험 팀에 대한 헌신, 열정, 서로를 좋아하고 믿는 신뢰. 그런 게 이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도전을 앞두고 걱정하는 나를 다독이는 방법은 10년쯤 뒤를 상상 하는 거다. 2034년 내가 되어보기. 도전하지 않았던 나로 사는 걸 상상하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다. 해보고 싶은가보다.
도전하고 실패하더라도 내 도전의 기록이 자산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한치앞도 모르겠어서 내년 이맘때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여러 도전을 해보고난 뒤 이 글을 다시 보게 된다면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실리콘밸리에서의 대화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거기서 느낀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