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앱을 빌딩하기 시작하면서 2025년 3월부터 5월까지 약 3개월 정도 미국 실리콘밸리에 머물렀다.

한국에서 시작하지 않은 이유는 서비스의 태생부터 글로벌이었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시작하기' <>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하기'를 비교한다면 사실 일하는 루틴에는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빌딩하고 고객을 만나고, 다시 빌딩하는 지루한 루틴 말이다. 

하지만 마인드셋, 만나는 사람들에서 큰 차이가 난다. 한번 사업 하는 것, 한국에서 1년에 몇십억 매출 만들려고 시작한 것 아니다. 범지구적으로 더 큰 임팩트를 끼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같은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 야망을 품은 사람들을 실리콘밸리에서는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경험상 아주 좋은 하우스에서 투자받거나 좋은 지원사업 코호트에 있는 분들 외에는 많지 않았던 거 같다. 

어쨌든 우리는 3개월간에 2개월은 팔로알토에서, 마지막 몇 주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게 되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서부의 날씨를 만끽하며 많이 뛰고, 운동하고,

캠핑도 다녀오고,

앱을 새롭게 빌딩하며 많은 분들을 인터뷰 하고 열심히 일했다.

뒤를 돌아보면 결과적으로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살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것들도 꽤 많았다.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잘 기록해두고 싶었던 일이다. 또, 힘들었던 만큼 이제서야 그때의 경험이 소화가 되는 거 같다.)

타지에서 팀원들과 같이 산다는 것

가족,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는 일상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남편이 너무 보고 싶었고, 내가 만든 새 가족과 떨어져 살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보내는 것도 힘들었다. 어느 날은 일하다가 갑자기 정전이 된 적이 있었는데, 영문도 모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 우리 잘못인가 싶고 걱정이 되더라. (알고보니 이 동네 전체가 정전이 된 거 였고 시간이 지나니 돌아오긴 했지만) 해결이 될 때까지 주변에 사는 친구 집으로 이동해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또, 우리는 해커하우스 컨셉의 EO하우스에 거의 계속 있었는데, 이것의 문제는 생활하는 곳과 일하는 곳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거의 7일 24시간 내내 붙어있게 되는 건데, 이게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묵게 되면서 두 사람이 같은 침대에서 자게 되는 등 서로의 개인 공간이 없는 며칠이 생기기도 했다. 이러면서 더 여유가 없어지고 스트레스받았다.

매일매일이 파티

사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활을 좋아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맥락의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그래도 서로의 안녕을 위해 다음 여행에서는 주말에는 따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명시적인 자유시간을 주자고 이야기했었다.

I’m nobody here

오히려 내게 힘들었던 건, 내가 지금 이 무대에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a16z의 Speedrun 배치, YC 배치에 지원서를 냈었다. 회사를 더 잘 키우려면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원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내 한계를 많이 느꼈다. 

“한국에서 훌륭한 팀은 미국에서 평범한 팀 이하다.”

Speedrun 배치에 지원하고 조언을 얻으려고 만났던 대표님이 하신 말이다. 뼈가 아팠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나고 자란 곳이 아닌 곳에서 뛰고 창업하는 건 정말 어려운 거구나. 정말 잘해야겠다. 그러면서도 한편 불공평하다고 느껴 며칠은 힘들어했다.

다운된 기분은 현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환기가 되었다. EO하우스에 놀러 왔던 여성 창업가 한 명이 자기가 가는 여성 주짓수 클래스에 초대해 줬는데, 수업이 끝난 뒤에 정말 랜덤하게 데일리 시티로 15분 차 타고 가서 버블티를 먹었다. 갔던 것도 즉흥적인 결정으로 가게 된 거였던 게 재밌었다. 여섯 명이 한 차를 낑겨 타고 이동했다. 가면서 코치님들이랑 여자 친구들이랑 수다를 많이 떨었다. 체육관으로 돌아와서는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그 친구가 지내는 해커하우스에 놀러 가서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파른 언덕도 지나고 예쁜 골목들을 지나니 집에 도착했다.

데일리 시티의 보바 가게

그날 밤에 신기하게도 내가 고민하던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있었다. 반은 못 알아 들었지만 수다떨면서 재밌었던 게 마냥 신기했다. 나는 여기서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친해지고, 연결되겠구나 싶었다. 그냥 하면 되는 거구나. 그냥 하면 되는 거군. 잘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나를 초대해줬던 Lilian

여정을 쭉 보내면서 미국에서 네트워킹하는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던 거 같다. 미국에 사는 한인 사회가 좁다는 것, 네트워크 기반의 인맥으로 굴러가는 것, 가족 단위의 문화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시간이기도 했다. 모든 곳은 밝은 면만 있지 않고 어두운 면도 있는 법이다. 이것은 다 쓰려면 너무 길기도 하고 언젠가 전반적으로 언급할 기회가 있겠다 싶다.

공동 창업자와 헤어지다

같이 시작했다고 같은 곳을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 회사는 세 명이 함께 시작했는데, 실리콘밸리 여행의 끝이 다가올수록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두 명과 다른 한 명이 다른 온도로 일하고 있다는 게 크게 느껴졌다.

한 명이 미국 법인에서 빠지겠다고 얘기한 날이 하필이면 YC 지원 마감일 전날 이었다. 집 앞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1시간 반 정도를 얘기하고 난 뒤, 지원서를 마저 써야 해서 일하는 공간으로 돌아와서 둘이 지원서 마무리하던 밤의 그 공기를 잊을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지면에 쓸 수 없는 다양한 일들도 한 번에 터졌다. 몇 주간은 정말 괴로웠다. 5월 말에 돌아오고 나서부터 한 달 정도는 남은 공동 창업자와 내가 계속 수습하고 해결하고 괴로워하고 그러면서도 해결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꿈을 꿨는데, 작은 상처에 딱지가 난 줄 알고 긁었는데 내가 긁은 피딱지에서 살점이 주우욱 나오더니 피가 철철 나는 꿈이었다. 일어나서 한참을 울었다. 내게 가까운 서포터 그룹이 없었다면 견디기 쉽지 않을 시간이었다. 다정한 남편이 힘든 것들 다 말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힘든 일에도 밝은 면이 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을 할 수 있었다. 누구와 일하고 싶은가, 우리가 만들고 싶은 팀의 모양은 무엇인가, 삶에서 어떤 임팩트를 내고 싶은가, 오히려 명료해졌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3개월간의 미국행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은 공동 창업자와 더 전우애가 깊어졌다. 전에 둘이서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처음에 만났을 때는 이렇게 창업할 거라고 예상 못 했고, 함께한 지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이다. 우리는 기질적으로, 업무적으로 역량 스탯이 다르고 보완하는 관계이다. 그리고 이 일을 정말 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열망도 크다. 이런 관계는 점점 깊어져 더 소중해진다. 내가 많이 아끼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건 값지다. 인생의 잊어버릴 수 없는 순간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3개월동안 빌딩한 제품은 성공했냐고? 아직까지도 죽쑤고 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우리 팀은 언젠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낼 것을 확신한다. 이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지금은 그 때와는 다른 새로운 팀원 분들과 함께 9월말부터 1달 반 정도 샌프란시스코에 함께 다녀왔고 지금 팀원 분들과 같은 제품을 다시 빌딩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10년 뒤에 후회하지 않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서 도전하는 것 같다.

“영어도 못 했던 토종 한국인, 한국에서 직장 생활 10년 하던 평범한 흙수저 디자이너가 미국에서 창업가로 성공하기.”

이게 이렇게 적어놓으니까, 더 말도 안 되게 느껴진다. 그래서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을 게 예상된다. 하지만, 난관을 어떻게 건너오는지에 따라 나를 성숙시킨다는 말을 믿는다. 이왕 시작했다면 정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 글을 보는 당신도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는 나를 그저 응원해 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은 나처럼 당신 삶에서 어떤 면에선 말도 안 되는 선택도 해보면 좋겠다. 힘들지만, 생각보다 다채롭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공동 창업자와 헤어지다

3개월간의 실리콘밸리 생활에서 알게된 사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