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멋진 날, 네 명이 해방촌에서 모였다. “안녕 세리모니”를 하기 위해서!
검색해도 안나오는 이 세리모니는 우리가 직접 이름을 붙인 것이다. (원래는 ‘보내주기 의식’ 이었음…)

카톡방 이름 인증..

원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네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뭔가 아쉬운 것이 있어 놓지 못한 과거에 “안녕~” 해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경험들에는 잘 이름을 붙여 보내주어야 미래를 깔끔하게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개똥철학이 있다. 우연히 세달동안 만난 사람들에게서 나랑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던 사람들을 만났고, 내가 공통점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1시쯤 남산야외식물원에서 만나 산책을 한참 했다. 처음 가본 식물원이었지만 나름 잘 가꿔져 있었고 소나무가 멋있었다. 수다를 떨면서 걷고 우연히 꿩도 만나고 해방촌 가는길도 잃어버려 살짝 헤매기도 했다.

남산에서 내려와 지하보도를 건너 해방촌으로 넘어오니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것 처럼 풍경이 갑자기 아기자기한 동네로 바뀌었다. 바로 근처에 있는 소금빵이 맛있다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카페에 앉아서도 한동안은 해외에서 먹은 음식부터 여행, 삶의 가치관까지 주제와 상관없는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 의식이 시작됐다.


“끝날 때 쯤 내가 어떤 상태가 되면 만족스러울까요?”

먼저 ‘이 자리가 끝날 때 쯤 어떤 상태가 되면 만족스러울지’를 먼저 이야기 하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방향성, 어떤 사람은 글을 쓸 수 있는 용기, 나는 ‘이미 나아지고 있지만, 조금 더 편안해지고 싶다’ 라는 얘기를 했다.

지난 6월말 나는 내가 창업한 회사를 나와야만 했다.

창업을 했다는 것은 거기에 온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것. 나는 토스를 퇴사한 뒤 만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동안 공동 창업해서 팀을 운영하고 팀 빌딩을 여러번하고… 서비스를 매각해보기도 하고, 암튼 여러 우여곡절과 함께였다.

그냥 회사 퇴사도 3년 넘게 다녔다면 여러 심리적인 부침이 있을텐데, 내가 창업한 회사니 애착은 더 심했다. 회사를 퇴사하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퇴사하고 나서도 한달동안은 에너지가 하나도 없었다. 6월 중순부터 한달간은 매일 울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밤에는 눈이 퉁퉁 불 때까지 울다가 잠들었고, 가끔 서울이라도 가는 날에는 혼자 차를 타고 가면 갑자기 눈물이 났다. 즐거운 일이 있어도 그렇게 기쁘지 않고 자꾸 눈물이 났다. 6월부터 7월동안 남편은 기운이 없는 나를 보며 안쓰러워했다. 겨우 일어나서 요가 가는 정도만 꼬박꼬박 했던 것 같다.

9월에 갔던 템플스테이를 계기로 정신을 좀 차리고, 그제서야 나와 내 주변을 찬찬히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힘든 시기를 훌훌 털고 잘만 일어나던데, 나는 힘든 시기를 생각하기만 해도 영향도 받고 힘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모임에서는 회사에서 나오고 난 시기의 힘들었던 얘기 보다는 좀 더 나아지고 있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각자 5분씩 얘기하고, 다른 사람은 듣기만 하죠. 끝나고 나면 코멘트를 해줄까요?”

우리는 모임의 규칙을 즉석으로 정했다. 한명씩 돌아가며 5분간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코멘트를 해주는 식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한 분의 얘기가 끝나고 내 차례가 되자, 나는 그동안 어떻게 회복해 왔는지 이야기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이 해준 말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 이야기를 듣고 한 분은 어쩌면 내게 이런 큰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기를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삶의 방식에도 큰 변화가 필요했을 거라고. 물론 어떤 일이든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 말을 듣고 보니 회사를 나온 뒤에야 할 수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쉬는 동안 남편과 시어머니가 아프기도 했고, 곧 첫 조카가 태어나면 돌봐주기로 했다. 내가 이전처럼 일하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가족들 곁에 있지는 못했을 것 같다. 물론 그랬다면 또 어떻게든 해결했겠지만,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순간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어쩌면 나에게 필요했나 보다 싶었다.

또 기억나는 이야기는 내가 했던 경험은 어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내게 ‘자신감이 있어보인다’면서 이미 가지고 있는 경험이나 했던 것들은 다시 반복할 수 있다고 해주셨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지난 3년이 아프게 끝났다고 해서 그동안 쌓아 온 것들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그 경험들은 앞으로도 나를 만들어가겠지.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되도록 '잃지 않는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운영하는 영어 공부 커뮤니티가 꼭 사업적으로 잘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 영어 실력은 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들인 시간과 노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 손에 잡히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작은 것부터 만들어 나가면 그 과정에서 효능감도 느낄 수 있고, 때로는 그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이 나에게는 꽤 잘 맞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지난 3개월 동안 나름대로 이것저것 만들어 왔다. 예전의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사업의 모습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이런 방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너무 애쓰지 않고, 내가 재미있게 오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 처한 상황도 앞으로의 숙제도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조금 더 자기다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처음에 조금 더 편안해지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모임이 끝날 무렵에는 이미 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일들을 완전히 잊거나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제 그 시간들을 조금 다른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끝나고 나서는 오늘 미리 잡혀있던 일정이 있어 성수 쪽으로 향했다. 거기서는 하이아웃풋 클럽에서 여는 멤버십 토크에서 “최성운의 사고실험” 진행자이자 주인장 최성운님을 만났다.

신선하게도 아주 날것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게 있었다. 본인도 이 채널을 운영하기 위해서 이전과는 다르게 스스로를 많이 몰아붙이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찾고 있다는 것. 꼭 나와 같이.

생각해 보면 요즘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에는 비슷한 고민이 많다. 어떻게 하면 오래, 즐겁게, 나답게 일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큼 애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꼭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난 3개월 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거의 반백수 같이, 운동하고 영어공부 하는 것 말고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전보다 훨씬 적은 일을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요즘의 나는 꽤 충만하다.

여전히 가끔 눈물이 나고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지지만, 이제는 그 시간들을 조금씩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안녕, 지난 3년의 나. 그동안 참 애썼다.

안녕 세리모니

헤어짐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